1921년 N°5의 투명한 병 디자인부터 Les Extraits 컬렉션의 개봉 의식, 그리고 뚜껑 안쪽에 새겨진 CC 로고까지. 샤넬은 향수를 사용하는 행위 자체를 하나의 완결된 동작으로 만들었다. 디자인 및 아이덴티티 디렉터 실비 레가스텔루아(Sylvie Legastelois)와 조향사 올리비에 폴주(Olivier Polge)가 오늘날까지 지켜지고 있는 그 디테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Les Extraits de CHANEL 한 병을 개봉하려면 먼저 끈을 잘라야 한다. 끈을 자르고 나면 왁스 봉인이 나오고, 그 안쪽에는 baudruche라 불리는 얇은 막이 한 겹 더 있다. 샤넬은 이 과정을 백 년 넘게 그대로 이어오고 있으며, 상자 안에는 이 동작을 위한 작은 가위와 가죽 케이스까지 따로 마련해두었다. 도구가 있어야 할 자리에 도구가 있고, 그 안에는 약간의 의식적인 무게감도 함께 담겨 있다.
샤넬 디자인 및 아이덴티티 디렉터 실비 레가스텔루아는 이를 "속도를 늦추고, 손에 든 향수를 다시금 새롭게 마주하게 되는 은밀한 순간"이라고 표현한다. 그녀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이 과정이 다소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지만, 바로 그 리듬이야말로 이 컬렉션이 의도적으로 지켜온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Les Extraits 컬렉션은 현재 총 11종으로, 처음 L'Extrait N°5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버전도 포함되어 있다. 이 모든 제품은 스프레이 형태가 아닌 유리 스틱으로 소량을 덜어 귓불 뒤, 가슴, 손목 안쪽에 발라 체온으로 서서히 향을 깨우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조향사 올리비에 폴주는 이렇게 설명한다. "Les Extraits를 직접 뿌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만큼 귀중하니까요. 몇 방울이면 향이 퍼지기에 충분하고, 그 흔적도 오래 남습니다."
1921년의 투명한 유리병에서 시작되다
이 의식적인 감각의 출발점은 1921년 N°5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의 모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투명한 유리병, 군더더기 없는 선, 장식이라 할 만한 것이 거의 없는 형태. 이 형태는 오늘날까지 그대로 유지되며, 뚜껑과 라벨, 비율 정도만 은근하게 조정되었을 뿐이다. 19종의 Les Exclusifs de CHANEL 역시 같은 어법을 이어간다. 흰색 라벨과 극도로 절제된 병 디자인으로 시각적 요소를 최소화해, 각 향이 스스로 말하게 한다.
Les Exclusifs 병뚜껑을 열면 안쪽에 서로 맞물린 두 개의 C자가 새겨져 있다. 이 디테일은 원래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치였다. 뚜껑 바깥쪽의 CC 로고가 항상 올바른 방향을 향하도록 하려면 자석이 정확한 위치에 자리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레가스텔루아는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의 "안쪽도 바깥쪽만큼 아름다워야 한다"는 말에서 영감을 받아, 이 기술적 구조를 그대로 드러내는 대신 그 자리에 CC 로고를 새겨 넣었다.
Les Extraits de CHANEL의 상자 역시 같은 논리를 따른다. 팔각형 외관은 N°5 뚜껑의 형태를 그대로 반영하는 동시에 파리 방돔 광장을 떠올리게 한다. 향수병을 꺼낸 뒤 상자 안 쿠션을 분리하면, 상자 전체를 계속 보석함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하나의 디자인이 지닌 생명은 계속 이어진다.
집 안의 의식에서 자유로운 휴대로
클래식한 Les Extraits가 집에서 시간을 들여 천천히 사용하도록 초대한다면, 새로 선보인 Les Extraits Purse Spray는 이 의식을 또 다른 생활의 리듬 속으로 옮겨온다. 이 디자인은 1950년대 N°5에 사용되었던 휴대용 스프레이 컨셉을 새롭게 되살린 것으로, 같은 외형 케이스에 서로 다른 Les Extraits 향수 카트리지를 교체해 넣을 수 있다. 오늘은 N°5, 내일은 1957, 저녁에는 Coromandel로—그날의 기분과 일정에 따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사각형 병 형태는 N°5의 디자인 유전자를 그대로 이어받았으며, 외형은 31 Le Rouge 립스틱 컬렉션과도 어딘가 닮아 있다. 가볍고, 내용물을 교체할 수 있으며, 가방에 넣어 언제든 휴대할 수 있다. 원래는 사적인 공간에 머물러 있던 향이 이제는 사용자를 따라 택시에 오르고, 사무실로 들어가고, 데이트 자리에도 함께한다. 이는 가브리엘 샤넬이 남긴 "가장 희귀한 사치는 행동의 자유다"라는 말과도 맞닿아 있다.
소리마저 디자인되었다
상자를 열 때 나는 청량한 소리, 자석으로 상자를 다시 닫을 때의 부드러운 소리, Les Exclusifs 뚜껑이 제자리로 자석처럼 딸깍 닫히는 소리—이런 미세한 소리들 역시 샤넬에게는 경험의 일부다. 소재의 선택, 자석의 구조, 뚜껑을 닫을 때의 손끝 감각까지, 디자인 팀은 청각과 촉각, 시각 세 가지 층위를 동시에 고려한다.
2026년 7월, 실비 레가스텔루아는 상하이에서 열린 CHANEL Grand Parfumeur 행사에서 진행된 매체 인터뷰를 통해, 샤넬이 그녀와 팀에게 준 가장 사치스러운 것은 다름 아닌 시간이라고 말했다. 몇 해에 걸쳐 사소한 디테일 하나하나를 거듭 다듬을 수 있는 시간, 그로 인해 디자인 자체도 향처럼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병의 형태는 시각적 인상을 결정하고, 소재는 촉감을 결정하며, 소리는 매 순간의 동작을 각인시킨다. 그리고 개봉과 사용의 방식은 하나의 의식을 이룬다. 이 모든 겹겹의 디자인 끝에도 향은 여전히 정중앙에 놓여 있다. 이것이 바로 샤넬이 한 세기 전부터 세워온 미니멀리즘의 논리다.